2010년 1월 10일 일요일

푸른눈의 평양시민

너무나도 유명한 격언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라는 아리스토 텔레스의 말을 과연 한번도 안 들어 본 사람이 있을까?

1920년대 실제로 인도에서 늑대에 의해서 키워지다 발견된 7,8세의 2마리 아니 2명의 소녀가 있었는데...
결국 둘다 사회에 적응을 못하고 죽고 말았다...

자신이 태어난 사회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새로운 사회에 적응한다는 것은 어쩌면
이처럼 목숨을 걸어야 할만큼 쉽지 않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시끌벅적한 사회속에서도 로빈슨 크루소처럼 혼자서 고립되어 외톨이 처럼 살아가는  이 들을 일컬어 사회적 동물이라 감히 말할 수 있을까?...

하층민, 빈곤층, 범죄자 등, 기타 자의반 타의반으로 차별받고 버림받은 수 많은 사람들을
우리는 뭐라 불러야 하나?... 패배자, 악당, 루저?...
사회로 부터 마땅히 격리 당해야 할 이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여기 패배자, 루저의 막다른 길에서 모험을 강행한 이들이 있다!!!


사실 북한이란 단어를 듣자마자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이미지는 대체로 다들 비슷하다...

나처럼 GOP근무를 해 본 사람이라면 철책선과 통문, 지루한 대남방송과 경계서는 초병들...
혹은 굶주림에 시달리는 인민들... 행여 그 누가 키가 2M가 넘는 푸른 눈의 이방인을 떠올렸겠는가??...

존재한다고 믿는다해도 포로나 강제로 납치된 불쌍한 사람들만 상상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푸른눈의 평양시민' 이란 다큐의 등장인물은 우리들의 일반적인 통념을 뒤엎는다...


불우한 어린시절과 자의반 타의반으로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패배자였던 그가 역설적으로 북의 선전용 혹은 기타 쓸모있는 도구로써 북에서 대접받고 식냥난에 시달리면서도 배급 또한 꾸준히 받고 북한 엘리트의 모든 혜택을 가족들이 이어 받을 수 있었다는 것...

따라서 좀 외로웠지만 그는 한번도 북한에서의 생활을 후회해 본적이 없다고 말한다...
미국으로 되돌려 보내준다고 해도 얼마를 주더라도 북한에 남아 있겠다는
이 남자의 말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사실 좀 뜬금 없지만 미국이나 호주와 같은 개척된 땅의 조상들도 따지고 보면 과반수는 본국에 적응 하지 못하고 실패한 인생들 아니였던가?... 목숨을 담보로 험난한 땅을 개척해 지금의 사회를 이뤄 냈다고도 할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새로운 사회를 건설한 것이고 위의 경우는 새로운 사회에 기존의 가치관을 다 버리고 편입한것이니 같이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어보인다.

가끔 미녀들의 수다를 보는 데, 자국에서는 별로 인기 없었는데 우리나라에선 유독 인기를 얻었고 좋아해
준다는 이들이 있다... 혹시 나도 어디선가 왕처럼 떠받들어 줄 곳이 따로 있지 않을까?...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걸리버 소인국의 걸리버가 주목 받고 대접 받는 것 처럼 말이다..ㅋ

혹시 고달픈 삶에 시달리며 '에라 모르겠다 하고 될되로 되라'는 식으로
현실의 분계선을 넘어 보고 싶은 이가 또 있는가?...


결과는 장담 할 수 없지만 목숨을 걸어볼 가치가 있는 지는 본인이 직접 판단하시길...^^*


P.S  가가멜이 강력추천하는 다큐 "푸른 눈의 평양시민" 이었습니다...

댓글 1개:

  1. 이들이 왜 조국미국을 버리고 북한을 선택할수밖에 없었는지를 알수있었습니다! 북한에는 먹을만한 음식들도 전혀없는데... 미군이 월북했을때 1962년~1965년이면 대한민국은 박정희대통령 초기때였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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